영덕 발달장애인의 험난했던 80일… "수수방관 지자체 책임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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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북연구소 작성일21-04-02 10:32 조회2,787회 댓글0건본문
경북 영덕군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퇴소했다가 80여 일 만에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인천에서 발견된 발달장애인 A(22)씨의 행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A씨는 천안, 대전, 인천 등 연고 없는 지역을 떠돌면서 폭행과 감금, 갈취에 시달렸다. 경찰은 A씨 사연이 보도(본보 31일자 8면)된 뒤 그를 괴롭힌 일당을 검거했다. 관할 지역 장애인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영덕군이 A씨에 대한 보호조치에 소홀했던 정황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세 번이나 돌아왔지만 보호조치 없어
3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말 영덕군의 'S장애인거주시설(S시설)'에서 나와 시내 원룸에서 지내던 A씨에 가장 먼저 접근한 사람은 어릴 적 보육원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B씨였다. A씨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는 중증 정신장애가 있어 성장기를 보육원에서 보냈다. A씨보다 나이가 많은 B씨는 "함께 살자"며 그를 천안으로 데려간 뒤 여자친구의 신용카드 비용을 A씨 돈으로 결제하는 등 착취를 일삼았다. A씨가 퇴소할 때 들고 나온 적립급 1,000여만 원과 장애수당을 자신의 쌈짓돈처럼 쓴 것이다.
직원들과 함께 영덕으로 돌아온 A씨는 영덕군이 보호 책임을 미루는 와중에 다시 사라졌다. A씨는 2월 20일쯤 자신을 길러준 보육원장에게 전화해 "배가 고프다" "발을 다친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S시설이 A씨 소재를 파악한 것은 3월 12일. 인천의 한 지구대에서 "A씨 친구의 실종신고를 받고 A씨를 찾았다"고 연락한 것이다.
다시 영덕으로 왔지만 A씨를 책임지고 보호할 기관은 없었고, A씨의 행방은 또 한번 묘연해졌다. 그러다 열흘이 지난 3월 22일 밤 인천 미추홀구 길거리에서 집단 구타를 당한 채 경찰에 발견됐고 나흘 뒤 영덕군의 긴급입소 승인을 얻어 S시설로 돌아왔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31일 A씨를 폭행한 C(20)씨 일당을 검거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C씨 일당은 여러 번의 집단 구타뿐 아니라 A씨를 모텔 등에 감금한 뒤 A씨 명의로 수백만 원 대출을 받고 휴대폰 3대를 개통한 혐의도 받고 있다.
"상황 수수방관한 영덕군 책임 커"
A씨가 시설 퇴소 후 각종 범죄에 노출된 데에는 영덕군의 책임이 적지 않아 보인다. 거주시설을 떠나 지역사회로 나온 장애인의 관리는 거주지 관할 지방자치단체 소관이다. 더구나 A씨처럼 인지능력이 낮고 보호자마저 없는 발달장애인은 지자체가 후견인 지정부터 안전망 구축까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하지만 영덕군은 수수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A씨 퇴소 시점부터 그랬다. 장애인 자립을 돕는 경북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A씨가 퇴소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룹 홈으로 연계하려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당시 S시설장은 임용 과정에 하자가 드러나 직무정지가 된 상태에서 A씨의 퇴소를 허락했다.
대전에서 A씨를 데리고 온 S시설이 영덕군 장애인 관리 부서에 A씨가 입은 피해 사실을 알리고 보호를 요청했지만, 해당 부서는 "퇴소한 지 1년이 안 됐으니 시설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책임을 미뤘다. S시설이 처음 인천에서 A씨를 찾아와 "시설에서라도 보호하겠다"며 긴급입소를 요청했을 때도 영덕군은 절차상 문제를 들어 거부했다. 이로부터 열흘 뒤 A씨가 인천에서 집단폭행을 당한 채로 돌아왔을 때에야 긴급입소가 허가됐다.
S시설 직원은 "발달장애인이 80여 일 만에 상처투성이로 나타났는데도 군청 내 담당부서 공무원 누구도 상태를 묻지 않았다"며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발달장애인이 전국을 떠돌던 석 달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영덕군 잘못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덕군 관계자는 "A씨가 살던 집을 수차례 방문했지만 항상 부재 중이라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A씨가 어떻게 폭행을 당했는지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