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사찰노예' 고발에..종교 특성상 '착취' 어렵다는 경찰
[경향신문] ㆍ지적장애 50대 32년간 청소·잡일 노동 착취…주지가 폭행도
ㆍ경찰, 명의도용 아파트 매매 혐의만 ‘부동산실명법 위반’ 송치
지적장애인 ㄱ씨(54)는 1985년 서울 노원구의 한 사찰에 맡겨진 뒤 32년 동안 청소와 잡일을 했다. ‘스님’으로 불렸지만 하루 평균 13시간을 일하며 명절에만 쉴 수 있었다고 한다. 주지 ㄴ씨(69)는 ㄱ씨가 제대로 일하지 않는다며 폭행하곤 했다. ㄱ씨 명의로 아파트를 매매하고 은행 거래를 하기도 했다. ㄱ씨는 2017년 12월 사무장의 도움으로 사찰을 빠져나왔다. ㄱ씨의 법률지원을 맡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지난해 7월 ㄴ씨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달 29일 주지 ㄴ씨에 대해 ㄱ씨를 폭행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장애인복지법·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혐의는 불기소 의견으로, ㄱ씨 명의를 도용해 부동산 거래를 한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6일 밝혔다. 경찰은 종교기관의 특성상 ㄱ씨가 노동력 착취를 당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는 노동력 착취라고 주장하지만 절에서는 집안일을 하는 것처럼 스님들이 힘을 합쳐 잡일을 하는 ‘울력’이라는 문화가 있다”며 “폭행의 경우 가해자가 앞서 법원에서 벌금형을 받은 폭행 사건들 외에는 피해자의 일관성 있는 진술이나 목격자가 없어 일시·장소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 끝에 ㄴ씨가 ㄱ씨의 이름으로 노원구의 아파트를 거래해 시세차익을 챙긴 사실을 확인하고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ㄴ씨는 ㄱ씨 이름을 빌려 은행 거래도 했다. ㄴ씨는 ㄱ씨를 은행에 데려가 계좌를 개설한 뒤 도장을 넘겨받아 사찰 운영비의 입출금 용도로 계좌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불법재산의 은닉, 강제집행의 면탈, 자금세탁 등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해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사문서위조·사문서위조행사 혐의만 적용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ㄱ씨 노동이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ㄴ씨 폭력에 따른 강제노동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2018년 ㄱ씨는 ㄴ씨를 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법원이 벌금 500만원으로 약식명령 처분하자 ㄴ씨는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지난해 8월 법원은 벌금 500만원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작업을 빨리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함을 치고 엉덩이를 걷어찼다”며 “2015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12회에 걸쳐 ㄱ씨를 폭행했다”고 판시했다.
최정규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은 “일부라도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것은 다행이지만 노동력 착취에 대해 수사기관이 보여주는 태도는 실망”이라며 “종교기관의 특성이라며 면죄부를 준다면 장애인 학대가 한국 사회에서 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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